Wednesday, January 29, 2020

마약과의 전쟁, 그 허와 실 - 요한 해리의 "Chasing The Scream" 을 읽고

Front book cover of "Chasing The Scream" by Johann Hari. 그는 세계 각국 정부의 마약에 대한 정책을 역사적 사실과 통계에 입각하여 통열하게 비판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마약에 대한 관념이 얼마나 조작되고 잘못되었는지 이 책에서 일깨워주고 있다.


요즘 재벌 3세나 고위직 자녀들의 마약 및 대마초 사건이 뉴스에 심심치 않게 나오고있고 그들에 대한 법적 처벌과 형량이 언론에 화자되기도 한다. 반면 일반인들의 마약 복용이나 제조 밀반입의 적발과 크게 대조되는 것도 사실이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여야 할까?

마약이라 하면 우리가 알기로 한번 복용하면 빠져나올수 없는 아주 무서운 물질로 알고있다. 예를들어 LSD같은 경우 얼마전 정치인의 자녀가 대량으로 밀반입하다 적발된 적이 있어서 유명해진 마약, 코케인의 100배가 넘는 강도를 자랑하는 너무도 무서운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마약. 그런데 과연 그럴까?

대마초는 과연 아편보다 위험한 마약일까? 아편은 왜 2등급 마약이며 대마초는 1등급 마약일까? 왜 1930년 이후 대마초가 불법이 됐으며 그로인해 역사적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를 나았을까?

마약과의 전쟁은 성공적인 정책이 되어져 왔으며 이 정책으로 인해 사회는 마약중독자를 양산하는 것을 억제할수 있었는가?

요한 해리의 책 "Chasing The Scream - The First and Last Days of War on Drugs" 은 이러한 모든 의문과 마약 정책에 대한 허와실을 역사적 사실과 통계에 입각하여 까발리고 있으며 그러면 이 사회가 마약을 어떻게 통제하고 제어해야 하는지, 중독자들을 줄일수 있는 정책은 전쟁말고 없는 것인지를 제시하는 지침서이자 마약에 대한 기존 통념을 깨고 의식의 전환을 도모하는 흥미로운 읽을거리라 생각하여 여러분께 소개한다.

100년 전쟁의 시작

미국이 주도하는 마약과의 전쟁이 시작된지도 어언 100년이 되어간다. 금주령의 실효가 유명무실해 지고 금주령을 관장하던 정부기관의 해체를 앞둔 1920년대말 미국의 금주령을 담당했던 헤리 제이 엔스링거 (Harry J. Anslinger), 지난 블로그 글에서도 언급한 바았는 유명한 인물이다, 는 그의 정부조직을 살리기 위해 금주령을 대신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게 되는데 시작 단계에선 헤로인이나 코케인등의 강력한 마약 단속의 기치를 내 걸었으나 그 당시 강력 마약 사건이 미비했던데다 그의 인종차별적 성향이 강하게 작용하여 강력한 마리화나 단속과 처벌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그의 캠페인은 정부와 정치인들의 열열한 지원으로 이후 30년 넘게 조직의 수장으로 일하면서 이후 80년대 미국이 마약과의 전쟁을 계승하게 될때까지 작금의 세계적인 마약과의 전쟁에서의 폐해를 일으키게한 근본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인종차별적 성향은 그가 행한 정책뿐 아니라 여러 개인적인 메모나 행동에서 쉽게 알수 있었다. 마리화나를 정책적으로 히스페닉(남미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주민)이나 흑인들 그중에서도 범죄자들이 피우는 마약으로 선동하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펼쳤고 흉악범들이 마리화나를 피고 범죄를 저지른다는 거짓 뉴스까지 퍼뜨리기에 이른다. (그 당시 미국 프로리다주의 한 청년이 도끼로 일가족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은 원래 정신병을 앓고있던 백인 청년이(Victor Licata) 저지른 사건이였으나 이를 마리화나를 피우고 미쳐 벌인 사건으로 둔갑시켰다.)

이 뿐만이 아니라 정부차원에서의 대대적인 메스컴 홍보를 진행하면서 그 유명한 "Ripper Madness" 라는 propaganda 영화까지 제작한다. 원래 미국서 마리화나는 카나비스 또는 인디안 햄프로 불리우고 있었는데 히스페닉 이미지를 심기위해 그들이 즐겨 부르는 마리화나로 통용해서 쓰기 시작했다. 이로써 100년간의 악마의 풀 마리화나 억압이 시작 되었다고 볼수있다. 이후 대부분의 마약사범 검거와 구속은 흑인과 히스페닉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단순 마리화나 매매나 이용으로 검거 구속된 수가 대부분이였다.

저자는 초기 해리 엔스링거의 극심한 인종차별 주의가 마약과의 전쟁 중심에 있었다는 주장을 여러 증거와 사건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실제 해리 엔슬링거는 흑인을 무시하며 부르는 용어들을 공식석상이나 공식 메모에 쓸 만큼 극도로 유색인종을 싫어했다.

저자는 이런 해리 엔스링거의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인종차별적 성향을 유명한 흑인 재즈 싱어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와 배우 주디 갈란드(Judy Garland)에 대한 실화를 예로 들고 있다.

빌리 홀리데이는 재즈싱어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으나  어릴적 학대와 불우한 환경을 보내면서 알콜과 헤로인 중독으로 40대에 생을 마감 할 때까지 유명세와는 달리 그녀의 생은 불우의 연속이였다.

해리 엔슬링거와의 불행한 인연은 그녀가 1930년대 발표한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 이라는 곡 때문이였다. 그 곡은 그 당시 미국 남부 백인우월주의자들이 흑인들을 죽이고 나무에 걸어놓은 사건을 다룬 반인종차별주의 성격의 저항곡이였다. 미국 정부와 해리 엔슬링거는 이 곡을 금지곡으로 지정하고 무대에서도 부르지 못하게 했는데 빌리 홀리데이는 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 일로 빌리 홀리데이는 마약국(The Federal Bureau of Narcotics)의 단속 대상이 되어 수감되는 일을 반복하다. 간경화 질환이 악화되어 긴급히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그런 위급한 환자인 빌리 홀리데이를 기소하여 병원 침대에 누운 그녀에게 수갑을 체우기에 이른다. 그렇게 마약단속국의 감시 아래 몇달 후 빌리 홀리데이는 사망하기에 이른다.(1944년 7월 17일)

반면 당대의 백인 최고 배우인 주디 갈란드(Judy Garland)에 대한 해리 엔슬링거의 처후는 비교가 된다. 주디 갈란드도 스타의 화려한 이미지와는 달리 약물과 마약중독으로 힘든 생활을 해 나갔고 앤스링거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그녀의 치료와 회복을 위해 묵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주디 갈란드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이른 나이에 사망하고만다. 뿐만아니라 앤스링거는 아편계열 즉 오피오이드 약물에 중독된 한 동료 정치인에게 복용을 자제할것을 권고 했지만 그냥 권고로만 끝났다. 이렇게 마약과의 전쟁은 시작부터 비틀어지고 의도 뒤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채 시작된 것이다.

바톤을 이어받은 닉슨 대통령 - DEA (Drug Enforcement Agency)의 출범

1960년대 30여년간 마약단속의 총수로서 해리 앤스링거의 퇴임에 이어 닉슨 대통령은 DEA를 출범시키는데 해리 앤슬링거가 출범시킨 연방 마약국(Federal Bureau of Narcotics)의 다른 이름으로 생각하면 된다. 앤슬링거의 이념을 그대로 표방 했을뿐 아니라 단속과 법적 처벌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당시 여러가지 환각성 약물들(LSD, MDMA, Psilocybin 등)이 소개되고 있었고 대마초의 의료적 효능이 발표되는 상황에 월남전에서의 미군의 마약사용이 창궐하고 있었다. 환각성 약물들과 대마초의 만연 때문이였을까? 미국의 인권운동, 반전운동, 자유주의 히피운동이 크게 일어나는 상황이였다. 이런 시대적 상황이 닉슨 정부에게는 큰 위협으로 다가왔고 DEA의 출범은 충분히 정부의 대응책이 될수 있었다고 닉슨은 판단한 것 같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선진국은 일직부터 환각제나 각성제의 개발을 진행했으며 전쟁에 이용해왔다. 1차 세계대전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의 고통을 줄이기위해 몰핀(Morphine)을 개발했는데 사실 몰핀은 헤로인이며 2차 세계대전에선 필로폰(Philopon-우리나라에는 히로뽕으로 알려져있 약명은 메스엠페다민(Methamphetamine), 아이스, 스피드로도 불린다.)이 군인들에게 지급됐다. 독일나치의 히틀러가 애용했으며 군인들이 몇일을 행군할때도 지급됐으고 일본군 가미가제 조종사들에게도 지급됐다. 또한 월남전에서 미군의 헤로인과 필로폰 남용은 심각한 상태였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1950, 60년대 미국 CIA에서 이런 약물들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 했다가 덮어버렸다. 이런 연유에서 였을까? 시민들에게 퍼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였을까? 모든 약물들을 1급 마약으로 지정하지만 아편(Opioids)계열은 2급으로 지정하면서 기업차원에서 연구할수 있는 기회를 편파적으로 열어주었다.

레이건, 부시시대의 마약과의 전쟁


닉슨시대 종식 후 수많은 월남전 참전 군인들이 다시 사회로 귀환했고 그 군인들의 처후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대두 되었으며 그 군인들의 상당 수가 헤로인 중독이였다. 포스트 War 시대를 이은 레이건과 부시는 실질적인 War on Drug을 선포했다. 1930년대 해리 엔슬링거가 했던 프로파겐다성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마약이라는 물질의 위험성을 과장, 노골적으로 선전함과 동시에 소수인종의 마약관련 체포와 수감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7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정부는 D.A.R.E.(Drug Abuse Resistance Education) 이라는 Program을 가동하여 대대적인 대국민 선전에 박차를 가했고 마약은 한번만 접하면 종독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절대로 건들지 말아야하는 물질로 국민에 각인시겼다. 마약남용은 분명 나쁜것이다. 하지만 왜곡적인 정보로 국민을 속이고 많은 차별적 구속과 처벌은 분명 하지말았어야 했다.

수많은 헤로인 중독 월남전 참전 군인들이 전후, 사회로 귀환해 모두가 중독자로 살지는 않았다. 대부분이 정상적으로 그들 생활에 복귀했다. 그리고 80, 90년 마약의 위험성을 선전한 포스터의 쥐 사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선전은 쥐를 대상으로 한 마약중독 실험에서 비롯되었다.

기존의 쥐를 통한 마약실험

최근에 실시한 쥐들을 대상으로 한 마약에 관한 실험

이 실험의 요지는 철창에 가둔 쥐 한 마리가 마약과 물을 공급 받았을 때 마약을 접한 쥐들은 거의 100% 중독 되어 죽었다는 내용이다. 이 실험에 근거하여 치명적 마약의 중독성을 국민들에게 선전하였다. 하지만 최근 이런 마약 중독의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다른 실험결과가 나왔다. 쥐 한마리를 독방에 가두고 물과 마약만을 공급하는것이 아니라 쥐를 여러마리 풀어놓은  철창 안에서 쥐들이 놀수있는 여러  시설들과 여러 식량과 함께 마약을 놓아두었다. 놀랍게도 이 실험에서 쥐들은 마약을 절대 건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실험에서 마약 중독이 마약만의 문제가 절대 아님을 설명할수 있다고 연구진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무조건 단속 수감하는 것이아닌 마약 중독에 대한 사회적인 보장과 관리가 절대로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마약과의 전쟁 - 그 억압의 폐해

앞에서 얘기한 단순 마약사범에 대한 그것도 소수인종을 타겟으로한 수감과 무거운 형량은 최근까지 증가추세에 있다. 흑인이나 히스페닉 청소년이 단순 대마초 사범으로 10년을 넘게 복역하는 일들이 잦아졌고 어느 주에선 종신형을 받는 일도 생겨났다.

이뿐만 아니라 법망을 피해 몰래 구입하고 투약하면서 다른 여러 위험한 환경과 질병에 노출되어 국민 위생에 치명적 요인으로 다가왔다. 오남용으로 인한 사망과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불법적으로 제조되어 불순물이 섞인 약물을 주사하고 그 주사기를 같이 사용하여 전염병, 간염, 에이즈및 합병증이 증가했다.

또한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마약은 법의 보호를 받을수 없기때문에 블랙마켓에서 잔인한 폭력과 힘의 논리로 지배된다. 특히 가난한 제3세계 국가들에서 거대 마약조직이 생겨나고 엄청나게 세를 불려 그들의 앞길을 막는 세력은 경찰과 정치인들을 응징, 처단하는 일까지 서슴치 않고있다.

멕시코를 비롯한 여러 중남미 국가에선 미국이 멕시코에서 들어오는 마약밀수를 강력히 단속하여 밀수출의 길이 막히자 마약밀매 조직간의 피비릿내 나는 싸움으로 엄청난 수의 조직원과 민간인 경찰들이 사망, 실종되어왔다. 또한 서방 선진국 제약회사에서 마약의 원료들이 비밀리에 제3세계 마약제조밀매 조직에게 대량으로 밀반출하는 사건들도 종종 일어나는것을 볼수있다. 최근 이런 중남미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으로 사망자가 늘어난 것에 대해 미국의 DEA의 수장은 조직을 자화자찬하는 성명을 내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진다. 또한 DEA 조직원과 마약 밀매조직이 결탁한 사건까지 최근 밝혀졌다.

마약과의 전쟁으로인한 폐해는 이뿐만이 아니라 단속, 구속, 수감에 쓰이는 세금이 어마어마하다. 어마어마한 국가적 손실은 늘어나고 있지만 마약 불법유통과 사용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그 시장의 규모는 줄어들 기세를 보이지 않고있다. 과연 세금은 이런식으로 낭비되어야 할까?

합법적 마약 가능할까?

미국 닉슨 대통령시절 대마초를 포함한 여러가지 자연 환각물질이 1급 마약으로 지정 되면서 대학이나 제약회사들의 연구가 거의 중단되었다. 하지만 차별적으로 아편은 2급으로 남겨 두면서 제약회사가 연구, 실험, 판매할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그당시 대마초의 의학적 유용성에 대한 연구가 나왔지만 정부차원에서 뭉게버렸다. 하지만 환각제에 대한 연구는 제한적으로 계속되었다. 그 결과들을 모아 몇몇 서방 선진국들이 마약과의 전쟁을 중단하고 합법화 방안을 모색하는 기초자료로 쓰기시작했다.

선구적인 국가들이 스위스, 포르투칼, 캐나다등인데 정부차원에서 마약에 대한 정책에 실패를 인정하면서 행정부가 마약 전문가와 연구진들을 불러 모았고 장고의 고민끝에 마약사용을 합법화 하기로 결정한다. 물론 마약을 제조, 판매하는 것은 불법으로 남겨 두었지만 구입과 투약은 합법화하는 동시에 마약 중독자에 대한 국가적 재활정책을 확대했다.

포루투칼이 가장 먼저 급진적 개혁의 칼을 꺼내들었다. 포루투칼이 합법화를 유럽국가중 가장 먼저 시작한 이유는 서유럽에서 최고의 마약중독과 높은 수의 에이즈(AIDS)및 간염환자를 보유한 이유가 가장컸다. 포루투칼 정부는 모든 마약사용을 합법화하는 한편 불법 마약제조와 판매를 엄중히 처벌했다.

그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경찰력과 교도소에 들어가는 세금이 큰 폭으로 낮아진 반면 마약 중독의 재활과 치료를 위한 시설 확충과 일자리 창출이 늘어났다. 마약 밀매조직의 세력이 극적으로 줄어들면서 암흑시장에서 검은 돈의 거래가 줄었고 이는 세수의 증대를 가져왔고 마약을 비밀리에 구매하면서 벌어지는 살인과 범죄가 현격히 줄어들고 마약 중독자들에 대한 재활 시설의 확충 뿐아니라 정기적으로 순도 높은 양질의 마약을 깨끗한 병원시설에서 정기적으로 투여할수 있게 함으로서 몰래 지저분한 장소에서 투여하는 일들이 현격히 줄어 에이즈와 간염의 발병율도 현저히 감소함으로 국민보건의 질이 현저히 향상되었다. 포루투칼은 이제 서유럽 국가 중에서도 마약범죄와 에이즈가 가장 낮은 국가들 수준으로 바뀌게 되었다.

스위스나 캐나다의 경우도 마약의 합법화로인한 개선점과 긍정적 효과를 보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이라는 자부심을 크게 갖고있는 나라다. 그리고 마약에 대한 법이 매우 엄격하다. 하지만 마약밀매와 중독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법적 처벌의 잣대도 차별적이다. 마약중독자들도 우리 국민들이다. 고위층이 마약을하면 집행유예나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나는 일도 없어져야 한다.

알콜중독을 재활치료 해주고 사회에서 법적으로 중독자들의 사회로의 귀환을 책임져 주는것 처럼 마약에 대한 사회 보장제도를 이제 처벌과 구속에서 재활과 갱생으로 바꾸어야 할 시대가 온것을 느낀다.

역사적으로 보면 마약과의 전쟁은 실패라는 사실이 극명해 짐과 동시에 합법화하고 국가에서 관리해야 하는것이 정답임이 모든 통계와 수치로 나타나고있다. 알콜중독의 폐해를 보라. 니코틴 중독의 폐해를 보라. 이들에 비해 마약중독의 폐해는 수치로 따졌을 때 극소수지만 엄청난것 처럼 잘못 각인되어 있다.

마약에 대해 합법화한 나라들은 마약에 대해 자유로히 연구하면서 새로운 긍정적 연구결과들을 도출하는 또다른 합법화의 잇점들을 만들어 가고있다. 환각성분의 자연 마약물질로 알코올과 니코틴 중독을 치료하는 단계에까지 와 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블로그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마약에 대해 무조건 타부시하는 것은 이제 구시대적 발상이다. 국가는 마약에 대한 법을 새롭게 정비하고 국가적으로 관리, 운영, 연구해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필요한 작지만 필수 불가결한 퍼즐의 한 조각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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